하모니카로 미국 국가를 연주한 한인 시니어들이 아이스하키 팬들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인공은 한인타운 시니어&커뮤니티센터(KSCCLA·이사장 신영신) 하모니카반 회원들로, 평균 연령이 80세에 달하는 이들은 이미 세 차례나LA킹스 경기에 초청받아 미국 국가를 연주하며 한인 1세대 이민자들의 존재감을 널리 알렸다.
특히 이들의 공연 영상이 LA 킹스 구단의 X 계정(구 트위터, 팔로워 114만 명)과NHL 유튜브 채널(구독자 240만 명)에 게시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첫 공식 공연은 지난 3월 23일 LA다운타운에 위치한 크립토닷컴 아레나(Crypto.com Arena)에서 열린 LA킹스와 보스턴 브루인스와의 경기에서 이뤄졌다. 이날은 ‘한인타운 헤리티지 나잇(Ktown Heritage Night)’으로 한인타운의 문화와 전통을 알리는 행사였다. 무대에 오른 하모니카반 회원 14명이 연주한 ‘성조기여 영원하라’ 첫 소절이 울려 퍼지자 1만8000여 관중이 함께 따라 부르며 경기장은 감동의 물결로 가득 찼다.
LA킹스는 이후 지난 4월 21일과 23일 각각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과 2차전 경기에도 이들을 초청해 하모니카 연주를 다시 선보일 기회를 제공했다. 이번에는 LA킹스가 제공한 유니폼을 입고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교롭게도 이들이 연주한 세 경기는 모두 LA킹스의 우승으로 이어졌고, 이들은 팬들 사이에서 ‘승리의 마스코트’로 불리기 시작했다.
짐 힐러 킹스 수석 코치도 1차전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오늘 승리는 국가 연주 덕분일지도 모른다”며 농담 섞인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하모니카반의 연주 이후 LA킹스는 연패를 겪고 있어 이들의 ‘승운’이 더욱 회자되고 있다.
시니어센터는 한인타운 안에 있는 유일한 커뮤니티 센터다. LA시 정부에서 190만 달러의 건축 기금을 지원받고 타운 내 주요 단체와 인사들이 60여 만 달러를 모아 2011년 문을 열었다. 지금은 연간 1500여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영어, 운동, 서예 등 40개 이상의 수업을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운영하고 있다.
박관일 사무국장은 “초창기에는 지도 교사 확보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UCLA, USC 학생들까지 봉사에 참여해 수업의 질과 다양성이 크게 향상했다”며 “등록일에는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고 전했다.

이번에 화제를 모은 하모니카반은 7년 전에 개설됐다. 대다수가 초기 때부터 참여한 회원들이다. 초기엔 가르치는 자원봉사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회원들끼리 매주 화요일에 모여 곡을 연습할 만큼 호흡이 척척 맞는다. 이들이 참여한 공연은 꽤 많다. 센터 연주회뿐만 아니라 교회나 지역 행사에도 가끔 초청받는다. 지난 해에는 LA시의회에서 공연을 펼쳐 시의원과 시민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캐롤 정(77)씨는 “아이스하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우리가 연주한 경기마다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뿌듯했다”며 “무엇보다 한인 커뮤니티를 미국 사회에 알릴 수 있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른 회원들도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며 “또 다시 공연 기회가 온다면 더 멋진 연주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전했다.
시니어센터 측에 따르면 LA킹스 공연 후 워싱턴포스트(WP), LA타임스, ESPN, TNT, 공영라디오방송국인NPR 등 국내 주요 매체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한국의 언론 역시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한 한인 할머니들의 활동을 크게 다뤘다.
신영신 이사장은 “아이스하키라는 생소한 스포츠 경기인데다 2만 여명의 관중이 모인 큰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이 훌륭하게 해내줘 자랑스럽다”며 감사를 표했다. 그는 이어 “이민자들의 성실함과 애국심이 하모니카 연주를 통해 전달된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무대가 자주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LA 킹스 구단은 5월 6일 ‘머더스데이’를 맞아 시니어센터를 방문하고 팬들과 함께 모은 후원금 1만5200달러와 선물을 전달했다. 프로 스포츠 구단이 시니어센터에 후원금을 제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