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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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이민 시위 5일째… 한인들 긴장 고조 우려

10일 오전, 한인 업소들이 밀집한 LA다운타운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했다. 평일이라면 손님과 직원들로 북적일 골목이지만 지금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와 하늘을 도는 헬리콥터 소리만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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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 10일 오전, 한인 업소들이 밀집한 LA다운타운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했다. 평일이라면 손님과 직원들로 북적일 골목이지만 지금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와 하늘을 도는 헬리콥터 소리만 요란하다.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대대적인 불법이민자 단속 활동에 항의하는 시위가 5일째 이어지면서 한인 커뮤니티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1992년 발생한 LA 폭동의 아픔을 갖고 있는 한인사회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의 여파를 경험한 만큼 이번 사태가 한인타운으로 확산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단속 첫날인 6일 오전, 다운타운 패션 디스트릭트 내 한인 의류업체 ‘앰비언스 어패럴’이 급습당해 10여명의 직원들이 체포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불안감은 증폭됐다. 일부 한인 업주들은 단속이 한인 업소 전반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해 직원들을 일찍 귀가시키고 매장을 닫았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한 한인 업주는 “국토안보부와 연방수사국(FBI) 요원 40여명이 매장에 진입해 단속을 벌였다고 들었다”며 “이 소식이 퍼지자 인근 업소들도 직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가게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다운타운 의류업 외에도 건설업, 요식업 등 라틴계 노동자 고용 비중이 높은 업종에 종사하는 한인 업주들은 연쇄적인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일부 라틴계 직원들은 체류신분 문제로 출근을 꺼리고 있어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으며 시위로 인한 도심 접근성 저하로 매출 감소까지 겪고 있다. 

샌피드로에서 의류 도매업소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직원 대부분이 라틴계인데 단속 이후 제대로 출근하지 않아 운영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로서리 마켓 업주는  “우리 가게는 다운타운과 다소 떨어져 위치해 있는데도 직원들이 가족의 신분 문제로 불안해 하며 출근을  꺼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니어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가까운 앤젤러스 플라자에 거주하는 최애림(85)씨는 “TV에서 불타는 차량을 보고 LA폭동이 떠올랐다”며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외출을 자제하려 한다”고 말했다.

LA한인회와 LA총영사관은 한인사회 보호를 위해 10일 오전  온라인으로 ‘LA불법체류자 단속 반대 시위 관련 안전 간담회’를 열고 커뮤니티 차원의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간담회에는LA한인상공회의소, 가주한인건설협회, 한인의류협회,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 올림픽경찰서후원회, 남가주한인간호사협회, 남가주한인외식업연합회, 가주한인식품상협회, 한국무역협회(KITA), LA평통 등이 참석해 현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받는 한편, 불법이민자 단속 과정에서 한인 고용주가 취해야 할  대응 요령 등을 안내받았다. 

캐런 배스 시장도 직접 회의에 참석해 “1992년 폭동을 경험한 한인사회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한인 뿐만 아니라 아시안 이민자 커뮤니티는 LA시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여러분의 안전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스 시장은  “현재 시위는 다운타운 일부 구간에서만 발생하고 있으며 LA 전역의 상황은 안정적이다. 일부 언론 보도와 주방위군 투입은 지나치게 사태를 과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배스 시장은 그러나 이번 시위 사태로 발생한 피해 보상 등에 대한 질문에는 구체적인 대답을 피했다.

김영완 LA총영사는 “LA폭동과 블랙라이브스매터 사태에서 아픔을 겪은 한인 커뮤니티인 만큼 한인들의 안전과 재산 피해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한인 커뮤니티가 이번 사태를 잘 넘길 수 있도록 정보 공유와 연락체계를 유지하며 실질적인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LA총영사관은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시위 현장 접근 자제를 당부하고 있으며, 피해 상황 파악 및 지원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운영중이다. 

한인타운은 지난 1992년 LA폭동 당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바 있다. 당시 한인식품상협회 및 여러 커뮤니티 단체들의 추산에 따르면, 2300여 개 이상의 한인 소유 업소가 피해를 입거나 전소됐다. 피해액은 4억 달러를 초과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당시 LA 전역 재산 피해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로 평가됐다.이 같은 광범위한 피해는 한인사회에 깊은 정신적 상흔을 남겼으며, 이후 LA 지역 한인들의 시민 참여와 커뮤니티 조직 문화에 장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한인타운은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발생한 시위에서도  50여개 업소가 약탈과 파손 피해를 입었다. 당시 시위대 진압을 위해 투입된 주방위군 일부가 한인타운 일대에 배치되기도 했다.

LA한인회는 시 정부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한인 커뮤니티의 우려를 전달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트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소셜미디어 엑스(X)에  ‘루프탑 코리안을 다시 위대하게(Make Rooftop Koreans Great Again)’ 이라는 문구와 함께, 1992년 폭동 당시 무장한 한인 남성이 옥상에서 총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려 논란을 일으키자, 즉각 성명을 내고 커뮤니티의 미칠 파장을 차단하는데 나섰다.

한인회는 9일 성명을 통해 “아직까지 소요 사태가 진정되지 않은 가운데 트럼프 주니어는 33년 전 LA폭동당시 ‘루프탑 코리안’을 언급하며 이번 소요 사태를 조롱하는 게시물을 엑스에 게재하는 경솔함을 보였다”며 한인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ICE 단속이 시작된 6일 이후 항의 시위는 점차 격화되며 일부는 폭력 사태로 번졌다.  9일  밤 브로드웨이 인근 애플스토어, 아디다스 매장, 보석상, 약국, 신발가게, 마리화나 판매점 등에서 약탈이 발생했으며 일부 업소는 방화 피해까지 입었다. 

LA경찰국(LAPD)은 일부 시위대가 화염병과 폭죽을 던지자 최루탄과 고무탄을 사용해 강경 진압에 나섰고, 지금까지100여명이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ICE는 단속을 계속 이어갈 방침으로, 항의 역시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진압을 위해 주방위군 2000명과 해병대 병력 700명을 투입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를 중지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와 별도로 LA시는 10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다운타운 일대 1스퀘어마일 구역에 통행금지를 발령했다. 배스 시장은 이날 저녁 기자회견에서 “약탈과 방화를 막기 위한 조치”라며 “필요시 추가 조치도 취하겠다”고 밝혔다. 통행금지는 별도 공지가 있을 때까지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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