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7일, 로스앤젤레스 서울국제공원. 한인축제 둘째 날을 맞은 공원은 일상의 산책로가 아닌 공연장으로 변모했다.
검은 레깅스와 티셔츠 차림의 시니어 30여명이 반짝이는 조명 아래서 힘차게 춤을 추고, 무대 뒤편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또 다른 시니어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에 오른 이들은 LA한인타운 시니어 & 커뮤니티 센터 소속 시니어들로, 장구반(지도 최혜련), K-시니어댄스(지도 서정아), 한국무용반(지도 고수희) 수강생들이다. 이들은 지난 3개월동안 준비한 공연을 이날 오후 한 시간동안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평균 연령은 80세. 그러나 무대 위에서 나이는 의미를 잃었다. 한국 전통 음악에 맞춰 흐르는 한국무용의 손짓,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장구춤, 디스코 리듬에 몸을 맡긴 춤까지, 서울국제공원은 이민의 시간 속에 쌓인 그리움과 기억이 예술로 표출되는 장소가 됐다.
공원이라는 열린 공간이 가진 힘은 축제 첫날에도 확인됐다. 10월 16일 개막식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한 하모니카 앙상블 팀이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환호로 화답했다. 40여 명의 시니어 연주자들이 만들어낸 이 장면은 단순한 식전 공연을 넘어, 공공 공간에서 형성되는 공동체적 경험을 상징했다. 개막식에 참석한 캐런 배스 LA시장은 “한인 커뮤니티의 뜨거운 에너지가 문화가 그대로 전달됐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공원은 운동이나 휴식을 위해 잠시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시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무대이자 삶의 이야기가 공연으로 이어지는 문화의 장이다.
실제로 이 하모니카 앙상블 팀은 지난 3월 LA킹스의 ‘K-타운 나이트’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국가를 함께 따라 부르는 장면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확산되며 화제가 됐다. 이후 주요 경기마다 초청이 이어졌고, 단 12명이었던 수강생은 현재 55명으로 늘었다.
새해에도 이들의 공연은 이어질 예정이다. 오는 1월 20일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리는 내셔널하키리그(NHL) LA킹스와 뉴욕 레인저스와의 경기 오프닝에 이미 초대받았다.
LA한인타운 시니어&커뮤니티센터의 이현옥 회장은 “LA킹스에 2년 연속 초청을 받게 돼 기쁘다”며 “한인 시니어들이 유럽 악기인 하모니카로 미국 국가를 연주하는 모습 자체가 LA의 다민족 다문화성을 상징한다”고 뿌듯해 했다. 그는 이어 “시니어센터가 LA의 다문화를 알리는 게 기여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주류사회와의 문화교류에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박관일 시니어센터 사무국장은 “장구반, 한국무용, 댄스반 모두 초창기에는 2~3명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연이 늘어나면서 현재는 장구반에 30명, 한국무용반과 댄스반에 각각 40명, 70명이 수강 중이다. 그는 “공연에 참여할 팀원을 매번 선발하는데 그 경쟁도 치열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 국장은 “공연 일정이 잡히면 한달 전부터 마치 아이가 소풍날을 기다리듯 설레어 한다”며 “공공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이 시니어들에게 큰 자부심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은 관객과 만날 때 완성된다. 서울국제공원 같은 열린 공간이 있기에 시니어들은 배움의 결과를 시민들과 나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공원의 문화적 기능은 세대를 넘어 확장되고 있다.
니콜 한(21)씨도 그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지난 7월 에코파크에서 열린 연꽃축제에서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해 한국 문화를 알렸다.
한씨는 야외 공연 경험에 대해 “자연 속에서 관객과 에너지를 직접 주고받는 느낌이 실내 무대와는 다르다”며 “공원은 문화가 가장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LA에서 태어난 한인 2세인 그는 현재 보스턴대학교에서 인간생리학(Human Physiology)과 공중보건을 공부하고 있다. 장래 희망은 치과의사이지만, 동시에 15년 넘게 춤을 춘 무용수이기도 하다. “공연과 창의적 표현은 제 삶의 중요한 일부”라고 말한 그는 바쁜 대학 생활 중에서도K-팝 댄스팀을 이끌고 모델 활동을 병행할 만큼 적극적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적 경험은 지난 11월 22레돈도비치 퍼포먼스 아츠센터에서 열린 미스 아시아 USA대회에서 ‘미스 아시아 USA 캘리포니아’로 선발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됐다.
한씨는 “미스 아시아 USA는 단순한 미인대회가 아니라 건강, 비즈니스, 사회 참여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회의 문이라고 봤다”며 “무엇보다 미국에서 자란 한인 여성들이 다양한 관심사를 가질 수 있고, 어느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도전한 이유를 설명했다.
앞으로 그는 일년간 캘리포니아의 아시안을 대표해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고 아름다움을 알리게 된다. 그는 “아름다움은 외적인 요소가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친절함, 좋은 인격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며 “또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와 정직함을 지키는 태도가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다. 이러한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보스턴에서 집 근처의 다리 위를 달리며 도시 풍경을 바라볼 때가 종종 있다는 그녀에게 열린 공간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닌, 개인의 삶과 도시의 문화가 만나는 접점이다.
한씨는 “공원과 같은 열린 공간에서의 문화 행사는 우연히 지나던 사람도 참여자로 만든다. 또 그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표현할 첫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보이지 않는 공공 공간의 역할을 전하기도 했다.
This story was produced by American Community Media in collaboration with the Laboratory for Environmental Narrative Strategies (LENS) at UCLA as part of the Greening American Cities initiative supported by the Bezos Earth Fund. Read more stories like this by visiting the Greening Communities homepage.







